다시 만난 세계
처음 글로벌 지구촌, 세계는 하나라는 구호가 나왔을 때, 뚱딴지같은 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강대국의 눈치나 살피며, 우리 스스로를 낮춰 부르던 신세(단일민족, 유구한 역사라는 말들은 반어적으로 우리 신세를 한탄하는 소리로 나는 들렸습니다)가 갑자기 웬 지구촌? 세계가 하나라고? 국내 정보조차 왜곡하고 통제하던 사회가 세계의 소식을 전하는 것이 어불성설이요 허풍으로 보인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이제는 다른 나라의 사정을 알지 못하고는 생존이 어려운 시절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거리의 건달도 아닌 것이 자기 집으로 불러놓고 조인트를 까면서 호주머니를 털어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으니 이제는 정말 지구촌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옆집 아줌마는 탈탈 털리면서도 웃어야 하고, 우리 대장은 삼국시대 부장품인 왕관 모조품마저 선물하며 허튼 웃음을 짓고, 양손을 비비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우리 대장이 그 집을 나오면서 우리도 국력을 빨리 키워야 하겠다는 말을 넋두리처럼 하였다는 소문에 나도 눈물이 찔금 나왔고, 속으로 우리 대장의 바람이 성취되길 기원했습니다.
동네 깡패에도 서열이 있어 넘버 투도 있고, 넘버 쓰리도 있습니다. 넘버 원이 조직원을 잘 먹여 저마다 배가 부르면 말을 잘 듣고, 그러면 넘버 투나 쓰리는 쪽을 못 펴는 게 세상이치입니다. 그런데… 넘버 원이 지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고 조직원을 살피지 않으니, 넘버 투도 쓰리도 나서기 시작합니다. 넘버 원에 대항해 저 밑의 조직원들도 대들기 시작합니다. 삼국지도 없는 나라에서 어디에서 배웠는지 모르지만(여기서도 지구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용히 합종연횡책을 여기저기에서 펼치기 시작합니다. 넘버원이 약할 것이라고 생각한 한 놈만 골라 팼지만, 코피가 나면서도 엉겨 붙습니다. 다들 넘버원이 옛날 넘버원이 아니라고 합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한 것인지 알기 위해서 김희교 선생이 지은 책 ‘다시 만난 세계’를 열었습니다.
넘버 원은 애초에 자기중심의 질서를 만들었습니다. 베풀기도 하고 때리기도 하면서 만든 이 질서는 굳건한 모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넘버 원이 만든 질서가 이상해진 것을 조직원들이 목격합니다. 넘버 원이 주도적으로 나서 이긴 2차 대전 이후 만든 규범이 넘버 원을 중심 한 질서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넘버 원을 믿고 따르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따랐습니다. 먹고사는데 밸이 조금 꼴리면 어떻습니까? 배만 부르면 된다는 것에 만족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넘버 원이 조금 이상해지더니만 조직원들이 자기를 속이고 지들만 잘 먹고 잘 산다며 새로운 규칙을 강요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직원들 입장에서는 그동안 질서가 있다고 나름 믿고 있다가 이 질서가 깨지는 모습을 보면서 무질서의 시대가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질서의 시대라…
넘버 원이 기존의 질서를 깨고 지 맘대로의 강짜가 통할까 알아보기 위해 10가지의 체크포인트를 정해 조직원들이 따져봤습니다. 지금이야 넘버 원의 말을 듣는 척하지만 앞으로도 넘버 원의 말을 들을까 말까 궁리를 하는 것이야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이걸 정리했습니다.
첫째, 관세인데, 이걸 보통 수입업자가 96% 부담한다고 하는데, 소비자에게 전가되면 물가가 오르고 그로 인해 경제가 어려울 텐데… 주변 다른 조직원들의 동태를 보니 마침 넘버 투가 ‘시발’ 하면서 반발을 합니다. 그러자 넘버 원이 넘버 투를 조집니다. 넘버 원 동네 애들은 계란에 매우 민감합니다. 어찌 된 일인지 계란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자 동네애들이 아우성입니다. 넘버 원이 이웃에게 계란 좀 보내라고 명령하자 여유가 없다며 배 째라고 합니다. 이게 옛날 넘버 원을 대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그동안 관세로 두들겼더니만 토라진 겁니다. 넘버 원 동네의 경제와 물가가 흔들립니다. 이게 둘째입니다.
셋째는 넘버 원이 자기 돈만 쓰라고 강요합니다. 자기는 종이하고 잉크만 가지고 마음대로 찍어대면서 강제로 쓰라고 했는데, 넘버 투가 안 그래도 된다. 우리끼리 우리 돈으로 서로 결재하자고 합니다. 이웃들도 금고에서 넘버 원의 돈을 조금씩 덜어내 금도 사고 다른 돈으로도 바꾸는 중입니다. 넷째 넘버 원이 간과하고 있었던 게 있습니다. 넘버 투가 희토류라는 금속을 전 세계를 통틀어 60% 채굴량을 가지고 있고, 정제된 희토류의 경우는 92%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넘버 원이 넘버 투를 함부로 못하는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다섯째, 그동안 넘버 원이 조직원이 다니던 길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알게 모르게 넘버 투가 다른 루트를 개척한 겁니다. 숨통을 조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샛길이 생긴 겁니다. 교통로가 바로 그것입니다. 일대일로가 뭔지 이제야 눈에 보입니다. 부산에 해양수산부가 옮겨온 것이 북극항로 때문이라고 하던 데, 넘버 원은 아직도 잘 모를 겁니다.
여섯째, 넘버 원이 자신만만했던 분야가 있습니다. 국제특허출원 등 혁신은 자기가 최고라는 믿음이었는데, 아직은 여전히 일등이지만 넘버 투가 뒤를 따라오는 속도가 무시 못할 수준입니다. 로봇기술, 안면인식기술, 드론기술, AI기술이 넘버 원 턱 밑에 따라왔다는 평가도(넘버 투가 일등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들립니다. 일곱 번째, 넘버 원이 그래도 가지고 있는 무기가 최고라는 믿음에 균열이 가고 있습니다. 가진 배 중 수리 들어간 놈 빼고, 싸움에 들어간 놈 빼고 나니 다른 곳에서 따로 싸울 배가 없습니다. 싸움하던 배도 화장실이 고장 나서 똥도 제대로 못 눈다는 첩보도 들립니다. 넘버 투가 만든 배는 기술에 있어서는 넘버 원에 견줄 바는 아니지만 쪽수에서 이미 능가했다는 분석입니다.
여덟째, 2차 대전 이후 대서양주의라고 불리던 협력관계에 있던 넘버 쓰린지 폰지 모를 조직원의 땅을 내놓으라고 넘버 원이 고함을 질러대는 통에 깜놀 했던 이들의 반응입니다. 이웃 넘버 쓰리를 두고 경쟁하는 놈과는 관계를 좋게 하지 마라, 넘버 투와는 장사하지 말라는 넘버 원의 명령에 딜레마를 느끼면서도 따랐던 입장에서 뒤통수를 단단히 맞았습니다. 이들이 이제는 넘버 투와 손을 잡고 장사를 하겠다고 하고 이웃은 우리가 맡는다며 넘버 원에 국방을 의지하던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아홉째, 이제 넘버 원이 이웃 조직원들 사이에서 무슨 짓을 했고 저 멀리 아프리카 조직원들에게도 어떤 짓을 했는지 복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민주주의, 친독재적인 행태를 보이며 자기 잇속을 챙긴 넘버 원의 행각을 다시 조명하기 시작합니다. 이쯤 되니, 마지막 넘버 원이 가진 핵우산을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의심하는 조직원들도 생겼습니다. 넘버 쓰리는 우리 이웃이 가진 핵을 믿고 넘버 원의 핵은 믿지 말자는 의견도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제 꼴랑 경제 10위인 우리도 핵을 가지자는 주장을 하는 조직원이 생길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쯤이면 질서가 무너지고 무질서가 횡행한다고 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전략으로 ‘무질서의 시대’에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그 문제는 글이 너무 길어져 여러분이 직접 책을 읽고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저자는 대전략, 중전략, 소전략이라고 해서 정리를 했는데, 아직도 뜬구름 같은 허무맹랑한 얘기로 들릴지, 아니면 참조할 전략인지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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