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사유의 시선 : 우리가 꿈꾸는 시대를 위한 철학의 힘 : 건명원 강의
글을 쓸 때 꾸미는 말을 조심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어릴 때 동네 골목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때, 유독 형용사와 부사를 많이 쓰는 친구가 있습니다. ‘억수로’ ‘엄청나게’ ‘진짜 진짜’ 등의 꾸밈말들은 재미는 있지만 신뢰감을 주지는 않습니다. 이번 책은 제목에 꾸밈말이 들었습니다. ‘탁월한’이라는 말이 무언가 강요하는 듯해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부제가 ‘우리가 꿈꾸는 시대를 위한 철학의 힘’입니다. 어떤 철학이 탁월할까요? 책을 엽니다.
책은, 다산의 실학은 종합적이고 전략적인 판단을 하는 데에는 미숙하였다면서, 유학적 도덕주의로 세계를 해석하는 피상성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으로 시작합니다. 다산이 “일본이 학문적으로 발전해 도덕적으로 성품이 높아졌기 때문에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등의 나쁜 습관이 사라질 것”이라고 평한 것은 복잡한 세계를 단순한 근거로 재단한 순진한 낙관론이었다고 비판합니다. 저자는 오늘 우리가 저주하고 한을 품는 일만으로는 부족하다면서 더 이상 치욕을 당하지 않을 구체적인 방안을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면적인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합니다. 과거의 피상적 인식이 일본의 지배를 당한 이유 중 하나이고, 오늘의 우리 역시 피상적인 저주와 한으로 일관한다는 주장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요?
문화, 사상, ‘철학하는 힘’을 가지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철학을 통해 자신이 튼튼해져 ‘높은 시선’ ‘높은 차원’의 활동성을 가지게 되고, 철학으로 튼튼해진 사람은 새로운 개념을 창출하고 새로운 빛을 발견함으로써 세계에 진실한 방향성을 제시한다고 합니다. 제대로 된 철학을 하라는 겁니다. 과거와 다른 철학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단순한 지식 습득에서 벗어나 더 높은 차원에서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때 철학은 시작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건국을 시작으로 민주화에 이르기까지 앞선 나라들을 따라 하며 발전하였는데 이제 철학으로 ‘선도력’을 갖자고 합니다. 그럼 선도력을 가진 철학은 어떻게 하나요?
독립하라고 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주변이 중심을, 소수가 다수를 전복하는 일련의 과정이었다고 회고하면서 기존 체계를 이탈하는 새로운 생각이었던 것이 믿음으로 자리 잡고 그 믿음을 밀어내는 또 다른 생각이 거듭되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이 여정은 고독한 인간의 독립을 바탕으로 한다고 하면서 집요한 관찰과 예민함으로 기존의 것을 낯설게 볼 때, 그리고 홀로 세상에 부딪치는 참된 용기를 발휘할 때 철학이 탄생한다고 합니다. 독립해야 철학을 할 수 있다는데 그럼 독립은 어떻게 할까요? 철학을 하면 독립이 된다는 말은 아니시죠?
어떻게 사유해야 독립할 수 있고, 그래서 선도력을 가진 철학을 하며 튼튼할 수 있을까 궁리하려 하는 데 갑자기 참된 나를 찾으라고 합니다. 삼풍백화점 붕괴부터 세월호 침몰까지 그동안의 재난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준비와 훈련이 부족한 우리 한국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라고 슬퍼하면서 우리는 기존의 관념에서 빠져나와 부지런히 새로운 지적 활동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온전한 덕을 갖추고 주체적으로 우뚝 서 은유할 수 있는 참된 ‘나’를 찾자는데, 그래서 그걸 어떻게 해야 하나요?
책은 여기에서 끝이 납니다. 우리는 그동안 철학을 하지 못해 미래 대비를 못했고 그러므로 인해 일제의 지배를 받았고, 지금도 아직 철학을 못해 저주하고 한을 품는 일만 일삼고 있다는 비판입니다. 그래서 문화, 사상, 철학을 하는 힘을 길러야 하는데, 이는 단순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니 선도하는 철학을 하라고 합니다. 기존의 지식 습득에 그치지 말고 새로운 철학을 하는 독립심을 가지라고 합니다. 그리해야 참된 ‘나’를 찾을 수 있고 그래야 한국 사회의 슬픈 자화상을 다시 그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저자가 설명하는 탁월한 사유의 철학이 보이질 않습니다. 어떤 모양의 철학인지 지식 차원에서라도 습득하려고 했지만 그가 어떤 사유를 했는지, 어떤 모양의 철학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탁월한 사유의 시선’은 어디를 보고 있는지 짐작하지도 못할 지경입니다.
우로보로스를 보는 듯하고, 철학이 실체가 없는 말의 성찬일 뿐이라는 오해가 생깁니다. 우리가 배운 철학은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사유의 결과입니다. 제목과 같은 '탁월한' 용머리가 없더라도 '시선'의 뱀꼬리라도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재주가 메주라 도저히 저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었습니다.
자신이 가진 철학의 구체적 모습을 밝히지 못하는 모습에서 중언부언 아는 척 설명을 하던 옛 선생들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과학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증명이라는 방법론을 택하기 때문입니다. 철학은 세상의 근본적 이치를 사고하는 학문일 터, 그동안 존재한 철학의 존재이유가 있을 법하지만 단순한 ‘지식’이 되어버린 기존의 철학을 습득하는 차원을 넘어서라는 말이 공허합니다.
바닷가를 아버지 게와 아들 게가 걷고 있습니다. 자꾸 게걸음을 걷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호통을 칩니다. “똑바로 걸어!” 아들 게가 아버지의 걸음을 지켜보면서 입을 다뭅니다. 아들 게의 입에 거품이 자꾸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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