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결정적 리더십의 교과서, 책 읽어드립니다)
흔히 마키아벨리와 관련된 이미지로 권모술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실행이 많이 제시된다. 특히 심리학 관련 2차 창작은 물론 교과서나 교양 책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많이 발견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마키아벨리를 설명할 수 없다. 과연 사람들이 권모술수로 농락당하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 마키아벨리를 제대로 읽고 이해했다면 1차원적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군주론에는 나름의 근대 철학이 담겨 있으며, 이를 이해하는 것이 마키아벨리가 전하고자 했던 바를 올바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길일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세상 사람들이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실제로는 있지도 않은 공화국이나 군주국을 머릿속에 그려 보는 경향이 있다고 이야기하며, 현실 생활과 이상적 생활의 상상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기에 적합한 접근 방법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현실 생활을 돌보지 않을 때에는 자신의 생존을 유지할 수 없을 뿐더러, 파멸을 재촉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이야기한다. 마키아벨리는 이처럼 정치적 현실주의, 즉 세력 관계나 물질 조건에 집중한다. 정치적 현실주의는 현실 세계의 정치를 분석하고 실행하는 것에 관련된 것으로, 규범과 정치를 분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마키아벨리의 시대상을 보면 통일된 이탈리아 민족 수립을 목표로 삼고, 이야기를 규정적 판단으로 전개하기 보다는 반성적 판단 위주의 사례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산봉우리의 특징을 알아보기 위해 평지에서 몸을 굽혀 보기도 하고, 평지를 알기 위해 산봉우리에 오르기도 한다는 걸 이야기한다. 마찬가지로 민심을 살피려면 군주의 입장에 서야 하며, 군주의 마음을 헤아리려면 인민의 위치에 있어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군주정에서의 군주와 인민의 기이한 우정 관계를 논하였다. 여기서 기이한 우정이란 증오 없는 공포(fear without hatred)를 우정의 본질로 삼는다. 즉, 인민이 군주에게 두려움과 만족감 모두를 가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동등한 친구 사이 우정이 아니라 수직적 위계가 존재해야 하며, 군주는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처신하여 인민과의 거리감을 만들어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발렌티노 백작(체사레 보르지아)를 예시로 들어 설명한다. 체사레의 경우는 타인의 무력과 행운으로 군주가 된 사례이다. 알렌산데르 6세 교황은 그의 아들 체사레를 교회 밖에서 군주로 내세울 도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프랑스의 루이 12세가 교황에게 재혼을 승인받기 원하는 상황에서, 이들은 체사레가 군주가 될 수 있게 도와주는 협약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루이 12세가 밀라노를 정복하고 밀라노 옆 로마냐가 체사레 보르지아에게 할양되었다. 체사레는 로마냐의 무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레미노를 파견했었는데, 레미노의 억압으로 로마냐의 증오심이 오르자 체사레가 레미노의 폭정을 이유로 처형하고 광장에 전시하게 된다. 이 권모술수로 로마냐 시민들은 여기서 체사레에 대한 두려움과 만족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마키아벨리는 폭력을 사용했는가보다는 폭력으로 어떤 효과를 가져왔는가를 중시하였다는 걸 볼 수 있다.
이런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무슨 역량(virtu)을 갖추어야 하는가에서 인간적인 면과 짐승의 면을 제시하며 추가로 운을 이야기한다. 싸움의 두 가지 방법으로 인간에게 적합한 법에 의한 것과, 짐승에게 적합한 힘에 의한 것이 있듯이 군주도 하나의 방법만으로는 불충분하므로 둘 다 갖추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군주가 짐승의 방법을 취하지 않을 수 없을 경우에는 여우와 사자를 모두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한 힘을 가진 사자는 함정에 속수무책이며, 간교한 지혜와 기만을 갖춘 여우는 늑대에게 무력하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기만적인 면을 인민에게 드러내서는 안 되지만, 신의를 지키는 일이 해롭거나 약속을 이행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졌을 때에는 신의를 지킬 수도 없고 또 지킬 필요도 없다는 것을 분별하고 이를 정당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군주는 속을 그대로 보여주기 보다는 인민 앞에서 가면을 쓰는 데 능숙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한편, 군주는 운(fortuna)에 의해 흔들릴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군주가 자기 역량을 가지고 평소에 대비를 하였다면 악운이 닥치는 경우에도 대처를 할 수 있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마치 여우처럼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순응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마키아벨리는 일에 신중하기보다는 차라리 과감한 편이 낫다고 보는데, 왜냐하면 운은 여신이고, 이에 맞서려면 군주의 여우같은 면(여성적인 면)은 더 강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수단이라도 목적을 위해서는 정당해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이에 명확한 방침을 제시한다. 주로 이런 질문을 떠올릴 때 생각하는 수단은 폭력일 것이다. 폭력에 대한 사유를 4개로 분류해보고 마키아벨리를 여기에 맞춰볼 수 있을 것이다.
1. 폭력을 독점: 폭력이 일반화된 상태(만인에 대한 만인의 적대)를 벗어나기 위해 안전을 보장하고자 폭력을 독점하고 양도하는 것이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예시로 들 수 있다.
2. 비폭력(nonviolence): 위법성을 포함하고 있지만 폭력을 행하지는 않는 비타협 시민불복종을 의미한다. 이는 폭력이 들어오는 것을 용인하는데, 극단적 폭력 앞에서는 무력하다. 간디가 비폭력저항으로 독립을 성취했지만, 독립 후 분열을 중재하고 안정에 도달하는 것에는 실패한 것을 예시로 들 수 있다.
3. 대항 폭력(counter violence): 폭력에 맞서서 무력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힘 대 힘으로 맞서는 것은 결국 극단적 폭력 앞에서 무력하다. 마르크스는 대항 폭력을 기대하여 1848년 혁명을 지지했지만, 결국 혁명이 실패하는 것을 예시로 들 수 있다.
4. 반폭력(antiviolence): 대항 폭력과 유사하다. 다만 극단적 폭력에 맞서서 폭력적 수단을 사용할 수 있지만, 그것이 극단적 폭력을 제어해서 정치가 가능한 공간을 열 수 있을 때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아가토클레스를 예시로 들며 이를 지지한다.
아가토클레스는 시라쿠사에서 가장 낮은 신분에서 시작하여 집정관이 되었는데, 군사를 거느리고 침공하려던 카르타고의 하밀카르와 합의한다. 어느 날 아침 나라 일을 의논하려는 것으로 위장해 시라쿠사의 유지와 원로들을 초청한 아가토클레스는 그 자리에서 원로들과 부호를 모조리 살해해 버렸다. 아가토클레스는 시민들로부터 어떤 저항도 받지 않고 주권을 잡게 되었고, 이후 카르타고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해냈다. 마키아벨리는 악이 제대로 쓰였다는 의미는, 잔인한 수단을 썼지만 다시 되풀이하는 일이 없고 이후에는 신민들을 위해 될 수 있는 한 행복을 도모하는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즉, 잔혹한 수단 중 badling used, 잔혹한 수단의 사용이 점점 더 증가하는 것이 아닌, well used, 자신과 시민의 안위를 위해 사용하고 신중을 기해 결코 되풀이하는 일 없이 단 한 번에 그치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
반폭력의 다른 예시는 10월 혁명기의 레닌을 들 수 있다. 1차세계대전으로 반전을 주장하던 제2인터내셔널이 애국주의로 전향하자 반전을 고수하던 레닌과 트로츠키, 스탈린, 룩셈부르크는 혁명적 패배주의를 주장하게 된다. 이는 프롤레타리아를 탄압하기 위한 부르주아 국가들이 제국주의 세계대전을 혁명을 위한 내전으로 변화시키고 부르주아가 패배하는 혁명으로 귀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짐머발트 회의에서 새로운 인터내셔널을 선언하고 반전 교육을 하였는데, 레닌은 전쟁론을 학습하며 전쟁은 사건이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라고 판단하게 된다. 그래서 전쟁이 지속될 수록 불만이 누적되는 걸 이용해 볼셰비키 당원에게 자원 입대하여 불만이 누적될 때 반란을 도모하게끔 지시한다. 또한, 독일과의 밀약으로 볼셰비키가 정권을 가져가도록 도와주는 대가로 러시아 군대의 철수를 내세웠다. 이후 레닌은 10월 혁명으로 2월 혁명 정부를 전복하여 노동자와 병사의 소비에트로 주권을 장악하게 된다. 이 사례는 밀약이라는 수단을 썼지만 다시 되풀이하는 일이 없게끔 하였다는 점에서 앞선 예시와 동질된 면이 존재한다.
인민은 지배받지 않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고, 귀족은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상반되는 두 계층의 욕구로부터 군주국, 공화국, 무정부상태 가운데 하나가 빚어진다고 이야기한다. 귀족의 추대를 받아서 군주가 된 자는 평민에 의해 군주가 된 사람보다 그 주권을 유지하기가 더 어렵다고 주장하는데, 전자의 경우는 그 주위에 군주와 비슷한 사람이 많아서 군주가 마음대로 그들을 조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평민의 지지를 받아 군주가 된 사람은 자유로운 입장에 놓이게 될 뿐 아니라 그 주위에는 복종하려 들지 않는 자가 거의 없고 혹시 있다고 하더라도 그 수는 불과 몇 명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마키아벨리는 군주라면 무엇보다도 먼저 대중을 자기편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신민을 무장해제하지 않을 경우, 군주가 신민을 신임하고 있다는 평을 받게 된다.
마키아벨리는 외적의 침략보다 내분이 성할 때에는 요새를 만들어야 하지만, 내분보다 외환이 심할 경우에는 요새가 필요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말은 단순히 상황별 지침이 아니라 어떤 규범을 함의하고 있는데, 마키아벨리는 아무리 훌륭한 요새가 있어도 인민의 분노를 사게 될 경우에는 요새가 군주를 구하지 못하지만, 인심을 잃지 않는다면 외환과 음모에 백성이 나서서 지켜준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요새만을 의지하고 백성들에게 미움받는 것을 개의치 않는 군주가 있다고면 비난받아도 마땅하다고 결론내린다. 이 부분에서 플라톤이 계급 적대로 인해 국가의 내분이 발생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 부분과 유사한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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