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의 지구사
피자가 이탈리아 나폴리 빈민들의 한 끼 식사였다니... 런던에 고든 램지의 레스토랑 메이즈 Maze 에서 흰송로버섯 피자가 소개되고, 기부 행사에서 토핑으로 캐비어, 스코틀랜드산 훈제 연어, 식용 금, 코냑에 재워둔 랍스터, 사슴고기가 올라가는 최고급 피자가 등장하는 미식 테이블을 보면서 떠오르는 단어는 '격세지감'일 것이다.
통일 이탈리아 2대 국왕 움베르토 1세의 아내 마르게리타 여왕이 나폴리 방문 당시 유럽 귀족들의 주식인 프랑스 요리에 질려있었는데, 나폴리에서 먹은 토마토, 모짜렐라, 바질을 얹은 피자는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피자 알레 모짜렐라는 즉시 개명하여 여왕의 이름을 단 마르게리타 피자로 다시 태어났으니, 이태리 국기의 삼색까지 입혀진 이 피자는 음식 민족주의를 등에 업소 비로소 국민 음식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다.
2차 세계 대전 중 남부 이탈리아에 주둔했던 수많은 미국군과 영국군들이 전후에 어디를 가든 피자를 찾았고, 이주와 관광의 증가로 피자 소비가 이탈리아 전역으로 확대된 것이 대중화의 진짜 원인인지는 모를 일이다. 여하튼, 피자 수요가 퍼져나가고, 정통나폴리피자협회 VPN이 결성되면서, 당시 국제적으로 유럽화되어 가는 모든 기준에서 나폴리 피자를 보호하고 피자의 기준을 정립하려는 시도를 한다.
VPN은 피자를 로비하고, 피자 가게에 회원증을 발급하여 정통나폴리피자 인증 스티커를 발행했다. 재료, 반죽, 장작 오븐의 지침을 철저히 준수해야 했고, 마르게리타 피자, 마리나라 피자, 마르게리타 엑스트라 피자, 단 3개 만을 정통나폴리피자로 인정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나폴리의 수많은 오래된 피자 요리사들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고, 미국, 일본의 피자 요리사가 피자 올림픽, 피자 월드컵에서 본토 이탈리아 요리사를 꺾고 우승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는 주요한 원인이 된다.
피자는 나폴리 거리에서 초라한 빈민의 패스트푸드로 태어났으나,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 것은 제 2의 고향인 미국에서 였다. 전세계에서 피자를 가장 많이 먹는 사람들은 미국인이다. 뉴욕의 리틀 이탈리아에 위치한 롬바르디 Lombardi's 는 이태리 이주민들에게 추억과 향수의 상징이며, 미국 피자의 성지로 일컫는다. 미국에서 성공한 많은 피자 가게들이 바로 이 롬바르디 출신 요리사들이 개업한 것이었으니, 미국 피자의 기준이 여기에서 확립되었다 할 만하다.
피자가 패스트푸드 최강자로서 맥도날드 햄버거를 넘어선 것은 냉동 피자와 프랜차이즈 덕분이다. 창고형 할인점에 산더미처럼 쌓인 냉동 피자가 급속한 양적 팽창을 가져왔다면, 도미노 피자와 피자헛의 라이벌전은 피자의 위상을 국제적으로 한 단계 도약시켰다. 두 브랜드는 앞다퉈 전세계에 매장을 내놓으면서 지구촌 구석구석에 피자를 알렸다. 도미노 피자는 주문 후 30분 이내 배달의 철칙을 광고했고, 피자헛은 내친 김에 우주 정거장까지 피자헛을 배달했다.
정통성, 편한 음식, 단순성, 넉넉한 양, 실험 정신 등 복합적 갈망의 만족을 피자라는 간단한 음식에서 경험한다. 토핑을 얹은 둥글납작한 빵, 전 세계 그 어디서나 적응하는 피자는 도우 위에 올라가는 토핑 재료의 제약이 없다는 무한한 확장성을 무기로, 웬만해서는 이길 수 없는 무적의 패스트푸드 왕좌를 오랫동안 지킬 것이다.
젊은 층, 변경의 음식, 아웃사이더, 변두리 음식, 가벼운 한 끼의 서민적 이미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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